[BOOK] 기억의 뇌과학(Remember)

Remember: The Science of Memory and The Art of Forgetting

관심이 많은 분야이다보니 기록할 것도 많고 꼼꼼히 읽다 보니 적은 페이지 분량에도 불구하고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주 유익한 시간이었다.

사람은 뇌의 관여로 인해 초콜릿과 섹스를 갈망하고 또 타인의 기쁨과 고통에 공감하며 스스로의 존재를 인식한다.

기억은 뇌가 수없이 행하는 복잡하고도 놀라운 기적이다.

기억은 학습에 반드시 필요하고 기억이 없이는 어떤 정보나 경험도 간직할 수 없다.

인생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실과 순간들이 하나로 이어져 삶의 서사와 우리의 정체성을 이루며 기억이 있기에 우리는 스스로가 누구인지 또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지 지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늘 경험한 일의 대부분을 내일이면 잊는다. 생각해보면 결국은 인생의 대부분을 잊어버리고 산다.

기억은 결국 우리가 기억하고 망각하는 것들의 총합이며, 기억과 망각 모두 어떤 면에서는 과학이기도 예술이기도 하다.

기억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각각의 경험에 대응해 서로 무관하게 일어나던 신경 활동이 하나의 패턴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이후 신경세포들 간의 연결 구조가 변하면서 패턴은 지속성을 갖게 된다. 새로 형성된 신경회로가 점화되면 영구적으로 달라진 신경 배선과 연결 구조를 경험하며 기억을 할 수 있게 된다.

우리가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것이다. 부주의는 뇌 활동의 기본 설정값이다. 뇌는 주의를 기울인 대상에만 집중하기 때문에 먹구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햇살이 부신 순간이 와도 알아차리기 힘들다. 

우리는 보고싶은 것만 본다. 날마다 즐거운 것만 보려 하고, 기쁘고 경이로운 순간에만 집중한다면 인생은 우리를 미소 짓게 만드는 기억만으로 가득하게 될 것이다.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에 저장되는 기억은 현재 의식에 머물러 있는 작업기억(working memory)이다. 시각적인 시공간메모장(visuospatial scratchpad)과 청각적인 음운루프(phonological loop)가 있으며 이 공간에 기억은 15~30초, 5~9 개의 정보를 보관할 수 있다.

순간에 주의를 집중하고 순간이 충분한 의미를 지닌다면 순간의 경험이 장기 기억으로 강화될 수 있다. 장기 기억은 정보, 사건, 방법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의미기억(semantic memory)은  학습한 지식, 삶과 세상에 관한 사실들을 저장해둔 뇌의 백과사전으로, 시간 제약이 없고 단순 사실만을 다룬다. 의미기억은 공부하고 연습해야 만들어지며 기억을 유지하겠다는 뚜렷한 의도와 목표도 있어야 한다. 

일화기억(episodic memory)는 이전에 일어난 일, 특정 장소, 시간과 묶여 있는 정보로 개인적이고 언제나 과거에 일어난 일이다.

정보를 일정 시간에 걸쳐 간격을 두고 외우면 내용이 해마에서 완전히 강화될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는데 이를 기억의 간격효과(spacing effect)라고 한다. 따라서 공부할 내용을 시간 간격을 두고 조금씩 외우면 더 많이 기억하고 덜 잊어버리게 된다.

기억은 정보를 뇌에 강하게 심는 과정과 정보를 꺼내오는 과정을 모두 포함하므로 효과적인 학습은 정보를 뇌에 반복적으로 노출시키면서 반복해서 꺼내는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사용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연습이 중요하다. 학습한 정보를 인출하는 과정에서 신경세포 간에 형성된 경로가 한번 더 활성화되고 강화되며 기억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이다.

외우려는 정보를 반복해서 읽기만 하면 수동적인 행위 반복에 불과하므로 정보를 꺼내오지 못한다. 따라서 반복해서 질문하고 답하는 것이 반복해서 읽기만 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이다.

그리고 기억의 형성에는 의미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뇌는 지루하거나 무의미한 것들은 알려고 하지 않으므로 더 많은 정보를 기억으로 남기고 싶다면 나에게 의미 있는 정보가 되게 해야 한다. 의미 부여는 기억술(mnemonic, 무의미하거나 서로 관련이 적은 낱말, 문장 등 기억 대상을 잘 알고 있는 것이나 습관적인 배열 등과 연관지어 쉽고 정확하게 기억하는 방법)의 원리이기도 하다.

장소기억법, 기억의 궁전(mind palace)은 물건이 어디 있는지 이미지화하고 기억하도록 진화된 뇌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시각과 공간의 이미지를 활용하는 우리의 능력을 통해 기억 대상을 물리적 장소와 연상으로 묶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정보를 시각적 형상과 장소에 결합하여 정교하게 부호화한다. 뇌는 시각 공간적 형상화를 즐기므로 이를 통해 능숙하게 기억하는 것이 가능하다.

더 많이 아는 사람들이 똑똑하지만 세상에는 정보 말고도 기억할 것이 많은데 살면서 쌓인 인생 경험과 지식이 결합될 때 비로소 현명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감정을 유발하는 경험은 그렇지 않은 경험에 비해 더 잘 기억에 남는다. 감정이 강력할수록 기억은 더 생생하고 세세한 내용까지도 정교해진다. 감정과 의외성이 편도체를 활성화하고, 자극을 받은 편도체가 해마에 강력한 신호를 보내기 때문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하거나 극히 감정적인 일을 경험하게 되면 섬광기억(flashbulb memory)가 생성될 수 있다. 이는 충격적이고 굉장히 의미 있으면서 공포, 분노, 슬픔, 기쁨, 사랑 등 격한 감정을 불러일으킨 경험들에 대한 일화 기억이다.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과 인생관에 부합하는 기억을 저장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긍정적인 사람의 자서전적인 기억은 웃음, 감사, 경외로 가득하고 부정적인 사람은 부정적인 것과 마찬가지다. 

미래 기억(prospective memory)은 나중에 해야 할 일에 대한 기억이다. 뇌가 해야 할 일들을 미래의 어떤 시간, 장소에서 떠올려야 하는 기억이다. 우리의 미래 기억은 신경 회로가 제대로 뒷받침해주지 않고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단서를 남겨야 한다. 이 단서는 할 일을 적어두거나 알람, 체크리스트 등을 사용해 효과적으로 떠올릴 수 있다. 이렇게 기억해야 할 일을 미리 적어 놓는 것은 약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얼마나 현명한지 보여주는 습관이다.

기억의 가장 강력한 적은 시간이다. 기억은 한시적이므로 보조 수단이 없는 상황에서 의도나 전략을 활용해 유지하려고 애쓰지 않으면 대부분을 잊어버리게 된다.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기억은 시간이 지나게 되면 일정 수준을 유지하며 초기 다량의 정보를 잊어버리고 나서 남은 정보는 잊지 않게 된다.

이 시간을 견뎌내는 기억은 반복과 의미 부여이다. 저장된 정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 활성화하여 반복해야 한다. 의미 부여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이나 평소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과 연관 지어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거나 의미 있는 기억을 반복하여 더 강력해지도록 한다.

반대로 잊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이 기억을 계속 떠올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어떤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단서나 맥락을 피할 수 없어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면 뇌에게 말을 통해 지시를 내리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새로운 기억이 완전히 생성되기 전에 기억 강화를 중단시키거나 이미 형성된 기억을 삭제하는 신경 신호 전달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방식이다. 또는 시각화를 통해 뇌가 스스로 기억을 삭제하게 할 수도 있다. 불쾌한 기억에 불이 붙어 사라지거나 적힌 글씨가 지워지는 것과 같은 모습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우리는 망각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잊는 것은 노화의 안타까운 징후이거나 우연이 아니다. 망각은 정말 중요하다. 덕분에 우리는 날마다 여러 방면에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잊는 것은 결국 기억력 향상에 기여한다. 

우리는 망각 앞에 무기력하고 수동적인 희생자이며 누구나 그렇다. 하지만 망각은 때로 용의주도하고 적극적이고 의도적이고 의욕적이고 목표가 뚜렷하고 효율적이다. 지능을 갖춘 기억 체계는 정보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유용하지 않은 정보는 적극적으로 잊는다.

기억 체계가 최적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정보 저장과 정보 삭제가 균형을 이루도록 섬세한 조정이 필요하다. 기억이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능력은 모든 것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고 유용한 정보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이다. 잊는 능력은 기억하는 능력만큼이나 중요하다.

나이가 들면 청각, 시각 기억이 모두 저하된다. 처리 속도는 삼십 대부터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이는 새로운 정보의 습득과 인출에도 더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을 의미한다. 주의력을 유지하는 능력도 줄어드는데 이는 새로운 기억 생성에 영향을 미친다.

나이가 들면 기억은 좋은 일만 떠올리고 나쁜 일은 잊는 경우가 많은데 노화에 의한 기억저하와 처리 속도를 피할 수는 없지만 정기적인 운동, 명상, 충분한 수면(8시간)을 취한다면 기억이 나아지거나 기억 나이를 오랫동안 젊게 유지할 수 있다. 건강한 생활습관은 치매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활발한 인지 활동이 알츠하이머에 강한 뇌를 만드는데 유용할 수 있지만 기억을 인출하는 기능을 비롯한 전반적인 기능은 나이와 함께 저하된다. 많은 사람이 기억능력 유지를 위해 두뇌 게임을 하지만 많은 시간을 쏟더라도 정신 기능의 건강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즉 나이가 들면 똑같이 기억력이 감소한다.

알츠하이머는 해마에서 시작되어 공간정보를 처리하는 두정엽, 전두엽, 전전두엽의 신경회로를 손상시켜 논리적 사고와 의사결정, 계획 수립, 문제해결능력 등에 문제를 일으킨다. 또한 기분과 감정을 제어하는 편도체와 변연계를 오염시켜 슬픔, 분노, 욕망 등을 조절하거나 억제하지 못하게 한다.

알츠하이머는 베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이 시냅스에 찌꺼기를 형성하여 15-20년에 걸쳐 쌓여가다 한계에 도달하여 분자 구조가 무너지고 얽히면서 신경에 염증이 생기고 세포가 죽어 기억이 비정상적으로 소실된다고 본다. 처음 기억을 잃는 증상에서부터 마지막 단계까지 진행이 평균 8-10년이 소요되어 결국에는 모든 종류의 기억을 인출, 생성하는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되는 것이다.

기억력 향상을 위해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일은 주의 집중이다. 그리고 맥락이다. 기억을 떠올릴 때의 맥락이 기억이 생성될 때의 주변 맥락과 일치할 때 우리는 기억을 훨씬 더 쉽고 빠르게 완전한 형태로 불러낼 수 있다. 즉 학습과 회상이 같은 조건 하에서 이루어질 때 우리는 학습한 것을 더 정확하게 기억할 수 있다. 

심리적 스트레스는 확신, 제어, 예측 가능성, 사회적 지원, 소속 등의 부재 인지로 인해 발생한다. 결코 현실에서는 발생하지 않더라도 단순 상상만으로도 뇌와 몸은 스트레스 반응을 온전히 경험하는데 그 강도로 따지면 실제 상황과 다름없다. 스트레스에 대해 몸은 투쟁 도피 반응인 교감신경계 반응으로 대응한다. 스트레스 호르몬은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이 있다. 

아드레날린은 효과가 빠르고 수명이 짧다. 심박율, 호흡, 혈압을 증가시키고 당장 필요하지 않은 세포 성장, 소화 등에 사용되는 혈액과 에너지를 팔다리로 보낸다. 또한 생각하는 능력을 제한하여 즉각 반응할 수 있게 한다.

코르티솔은 15분-1시간 후 활발히 분비되며 에너지를 동원해 스트레스에 물리적 대응이 가능하도록 하며 상황 종료 후 스트레스 반응을 완전히 멈추게 한다.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은 편도체에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게 하고 편도체는 해마에 신호를 보내는데 이를 통해 기억을 강화하게 된다. 또한 코르티솔은 해마에 직접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일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라면 스트레스는 기억 형성에 도움이 된다. 스트레스는 새로운 기억의 형성을 돕지만 감각과 주의력이 올라가는 대상이 좁아지므로 기억에 대한 세부 정보도 줄어든다. 따라서 스트레스 중심의 정보에 대한 기억은 강렬하지만 주변 정보는 희미해진다. 급성 스트레스의 정도에 따라 기억이 형성되는 정도가 다르며 사람에 따라 감당할 수 있는 스트레스의 양이 다르다.

일시적인 스트레스는 기억 형성을 원활하게 하지만 인출 능력을 저하시킬 수 있다. 만성 스트레스의 경우 코르티솔 과다 상태가 되어 이는 사고 능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해마의 신경생성을 방해하여 해마가 작아지고 기억을 담당할 신경세포도 줄어든다. 또한 스트레스나 코르티솔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해마의 신경세포는 뇌졸중이나 알츠하이머와 같은 공격에도 취약한 상태가 된다.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요가, 명상, 건강한 식습관, 운동, 마음챙김 수행, 감사, 공감을 통해 스트레스에 조금 둔감해지고 도피 반응에 브레이크를 걸고 불안이라는 독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단련해야 한다.

잠은 건강과 생존에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최적의 기능을 유지하는 데도 반드시 필요하다. 잠은 기억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집중력을 높일 뿐만 아니라 부호화된 기억이 사라지지 않도록 저장 버튼을 누르는 역할도 한다. 또한 잠은 모든 종류의 근육 기억에도 도움을 준다. 잠은 완벽한 기능 습득에 도움이 된다. 무엇을 배우건 잠을 자고 나면 연습을 더 많이 하지 않아도 더 잘하게 된다. 낮잠도 효과적이지만 밤잠은 더욱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잠은 알츠하이머에도 효과적이다.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신경교세포가 알츠하이머의 원인인 아밀로이드 퇴적물을 청소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짧고 깊은 잠보다는 충분히 청소 작업을 끝낼 수 있도록 긴 잠을 자는 것이 좋다고 한다.

성인은 7-9시간을 자도록 진화했다. 이보다 적게 자면 심혈관계와 면역계의 기능 저하, 정신 건강과 기억의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 충분한 수면을 통해 심장병, 암, 감염병, 정신질환에 맞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보통 심장에 좋으면 뇌에도 좋고 알츠하이머 예방에도 좋다. 반대로 말하면 고혈압, 비만, 당뇨, 흡연, 높은 콜레스테롤 수치 등은 알츠하이머의 발병 위험을 높인다.
운동과 정신 활동 모두 해마에서 새로운 신경세포가 성장하는 것을 촉진하며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규 교육을 오래 받고 지식 정도가 높고 정기적으로 사회적, 정신적 자극을 받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인지적 비축분이 많고 이는 알츠하이머의 뇌 상태를 갖고 있더라도 병의 징후를 막아준다. 인지적 비축분이 많으면 알츠하이머로 일부 스냅스가 손상되더라도 예비 혹은 대안이 많아 문제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손상되지 않은 신경회로로 우회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인지적 비축분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여 만들 수 있는데 이는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인지자극이란 새 친구를 사귀고 새로운 도시를 여행하는 것, 새로운 책을 읽는 것 등을 의미한다.

그렇게 우리는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요가, 명상, 건강한 식습관, 운동, 마음챙김 수행, 감사, 공감을 통해 스트레스에 조금 둔감해지고 도피 반응에 브레이크를 걸고 불안이라는 독을 건강하게 관리할 수 있도록 단련해야 한다.